일요일에 집에서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며 배고프면 라면에 밥 말아먹고
졸리면 낮잠도 자다가 이불속에서 뒹굴 거리며 하루를 보내려고 했다.
오전에 외출하셨던 어머니가 들어오시더니 갑자기 김장을 하기 시작하신다.
여름에 다친 목과 허리 때문에 김치 담그며 내 뱉는 아픈 신음이 내방까지 들린다.
이불속에서 편하게 책 읽고 있을 수가 없다. 나도 도와준다며 뭐하면 되는지 여쭤봤더니,
대꾸를 안 하신다. 귀찮으니 말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. 계속 물어보면 좋은 소리 안 나올 게
뻔하니 옆에서 말동무나 되어 드렸다. 그러고 보니 김장하는 것을 철들고 처음 보는 것
같아서 어릴 때 추억이 떠올라 어머니와 옛날이야기를 했다.
지금은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지만, 생각 해 보면 어릴 때 우리 집에는 사람들이 항상
많았던 것 같다. 형제가 많기도 했고 사람 좋아하는 아버지를 둔 덕분에 집안에 사람들
발길이 끊이지 않았다. 김장때면 동네 이웃, 친구 분들과 함께 100포기 정도 했다고 하니
집에서 김치 먹는 사람이 많았나보다. 김장하는 날은 집안에서 열리는 일종의 파티 같아서
김치 뿐 아니라 이것저것 먹을 음식도 많았던 것 같다.
20여년이 지난 오늘은 김장 스무 포기를 어머니 혼자 담그고 계신다. 어머니께는 오늘이
예전처럼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파티도 아니고 김치 없인 못사니까 단지 1년 먹을 김치를
만드는 날이다. 친구 좀 부르지 그랬냐고 여쭤보니, 안 그래도 월요일에 김장 날짜를
잡아놓고 두 분이 오시기로 했는데, 배추가 너무 절어서 오늘 하게 됐단다.
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는 안 갔지만,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나보다. ^^;
내게는 김장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기회였는데, 이것저것 손도 많이 가고
보통일이 아닌걸 알게 된 하루.
김치속 만들기
배추에 김치속 버무리기
김치통에 담기
김장 스무포기 자정무렵 완료
나는 묵은 김치를 좋아하는데 저 김치들 묵은지 되려면 몇 개월 걸릴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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